최기영의 시사 블로그입니다

2008년 5월 29일 목요일

지식인으로서의 의무

2. 지식인으로서의 의무
1. 이 땅의 보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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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보라고 비웃음을 사는 이공계 출신이긴 하지만 그래도 배울만큼 배웠다. 내가 완벽한 성인군자는 분명 아니고 이런저런 크고작은 잘못을 하고 산다. 의도적으로 하는 잘못도 있고 몰라서 하는 잘못도 있다. 하지만 내 의도와 관계없이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누군가가 지적하면 난 부끄러워 할 줄 알며 무엇이 정답인지에 대해 스스로의 기준도 갖고 있다. 그래서 난 스스로를 이 땅의 지식인이라고 칭한다. 지식인은 그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돈, 권력, 지식.

이 세 가지는 현대 사회에서 분명 소유한 자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수단이기에 이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그 수단을 불려가는데 유리하다. 돈이 없는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그 돈을 불리는데 유리하며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보다 대학 교수가 지식을 늘리는데 유리하다. 다시말해, 같은 노력을 했을때 효율이 더 좋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효율이 다르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세가지 힘을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은 그렇게 돈을 모으기까지 노력을 했을 것이며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더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고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인내를 해야 했으리라.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방치하게 되면 사회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효율적으로 버는 돈의 일부를 사회 안정 비용으로 제공해야 하며 권력이 있는 사람은 그 힘을 소수자들을 위해 일부 제공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가 많은 사람은 이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그 지식을 나누어 주고 사람들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의무를 갖고 있다. 언뜻 사회주의, 공산주의적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그냥 1/n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사회의 균형 유지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투자를 무시했기에 프랑스는 사회 계층간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졌고 결국 시민혁명을 맞았다. 나만 잘사는 것보다 조금 나누어 줘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적당히 잘살게 하는 것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사회가 안정되는 것이 결국 내가 가진 돈과, 권력과, 지식을 지키는 방법이다. 역사속에서 이러한 내용을 체득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그래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 강조된다. 가진자가 조금 양보하는 것이 사회도, 그리고 자신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가지 힘 중 지식을 가진 나 역시 그러한 의무를 갖고 있다. 나는 소외되고 버림받은 제도권 바깥 사람들을 위한 사회시설에 매달 일정액씩 기부하고 있으며 내가 학위를 받은 후 벌어들일 수입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사회에 환원하자고 아내와 약속이 되어 있다.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많은 우리 부부의 자녀 계획에는 입양도 들어 있다. (결혼하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약속으로 우리는 입양을 약속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첫 데이트 장소는 복지시설이었으니 어쩌면 서로에게는 당연한 약속일수도.) 그리고 내가 이행하고 있는 마지막 의무가 하나 있다.

바로 사회가 잘못 돌아갈 때 앞에 나서서 이를 대중에게 알릴, 그리고 힘 닿는곳까지 막아야 하는 의무다. 나는 아주 가끔씩이긴 하지만 이를 위한 노력을 블로그를 통해 하고 있다. 직접 거리에서 투쟁하는 것은 내 성향도 아니고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다고 믿는다.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문제를 인지시키는 것도 거리에서 투쟁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신체적인 능력보다 지적인 능력이 좋은 나같은 책상돌이에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기도 하다.(그런 내가 요즘은 앉아있기 힘들다. 과도하기 시행되는 무력진압을 바라보며 자꾸 눈에서 불똥이 튄다)

나는 진보와 보수로 거칠게 분류하자면 보수에 속한다. 보수라고 칭하는 내가 소수자에게 관심을 갖고 사회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것을 놓고 지인 중에는 내가 가진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수자에 관심과 배려를, 사회 부조리에 정정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보수는 가진자만을 배려해야 하고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도 내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묵인해야 하는가? 그러한 태도는 오히려 보수 주의자들이 원하지 않는 사회 불안을 부추길 뿐이며 진정한 보수의 모습이 아니다. 진정한 보수는 소외자들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가진 것을 그들을 위해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 진보만의 권리나 의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 처럼.

그리고 요즘, 이 땅을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보수도 아니면서 보수정권인척 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었고 또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가고 있다. 분명 치기어린 영웅심에 몸사리지 않는 어린 청소년들도 있을 것이며 이 기회를 정권 타도의 초석으로 삼으려는 정치세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많아봐야 일부에 그칠게 뻔한 세력을 배후로 지적하면서 그렇지 않은 다수를 분노하게 만들고 있는 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초가 삼간을 태워먹기 전에 이 사회의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지식인들이 나서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이며 그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고 반대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설득을 해야 하는 시기다. 물론 이 일의 초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정부에 대해 설득을 하려 했으나 먹히지 않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못알아 듣는다고 대화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과정에서 권력에 영혼을 팔아버린 지식인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네들 마저도 설득하려 노력해야 한다.(사실 이 두편의 글을 쓰게된 동기가 바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든 울분 때문이지만...그래도 그들 역시 설득하고 포용해야 할 존재들임을 쓰는 동안 힘겹게 떠올려야 했다.)

돈, 권력, 지식.

이 세가지 힘 중 지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사회에 할 수 있는 의무가 어떠한 것이어야 겠는가? 세가지 힘 중 가장 무력한 것이 지식일 수 있으나 악용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이 지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회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나 자신을 비롯해 이 땅을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게 소리 높여 묻고 싶다.

지금, 진보나 보수를 떠나 우리가 진정으로 있어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어디에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어야 하는가?

2008년 5월 28일 수요일

이 땅의 보수를 위해

2. 지식인으로서의 의무
1. 이 땅의 보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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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수다. 그럼에도 이명박과 한나라당, 동아, 조선이 싫다. 이유는 그들이 진정한 보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는 미래를 이야기 하고 보수는 현재를 이야기 한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며 동시에 희망적인 것이다. 따라서 진보는 완벽한 논리보다는 희망을 근거로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는 확실한 것이며 동시에 안정적인 것이다. 따라서 보수는 불명확한 희망 보다는 완벽한 논리를 근거로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나는 둘 중 보수의 논거를 마음에 들어한다. 내가 보수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다.

그런데 현재, 10년만에 보수정권이 들어섰다고 하는 요즘 진정한 보수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진보가 미래를 이야기 하며 들뜬 목소리로 주장을 펼 때 그들이 반박하기 어려운 단단한 논리로 그 주장을 다독거려 잠재울 수 있어야 진정한 보수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무언가 잘못 됐다. 보수정권, 보수언론이라 칭하는 존재들은 불확실하며 설득력 떨어지는 논거로 주장을 펴고 있고 진보는 그러한 주장을 철저하고 단단한 논리로 격파하고 있다. 그러한 격파 뒤에 진보가 내세우는 희망도 들어 있다. 청계광장에, 광화문에 하나로 규합된 적 없던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는 이유는 논리와 희망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가 보수답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의 목소리가 한쪽으로 편향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가 보수답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에게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한반도 대운하를 거쳐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까지 수없이 많은 보수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주장을, 짧은 것은 몇시간만에 그 논리를 격파당해 허겁지겁 '오해' 라며 접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들이 논리로 무장해야 하는 보수정권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미국산 소고기도 마찬가지다. 굳이 근거자료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보수언론과 정부 관계자들의 언행을 보면 그들에게는 논리가 없다. 논리라고 가져다 붙이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 논리라고 가져오는 것들이 수개월 전 자신들이 했던 주장에 의해 격파되는 형국이니 더이상 무슨 말을 하랴. 진보가 보수의 논리에 할말이 막혀서 대꾸할 말을 찾다못해 결국 "그래도 미래는! 희망은!" 이라고 주장해야 할 판국에 불과 몇개월 전 보수진영에서 했던 주장들을 가져와 의문을 제기하는 진보 세력에게 '괴담' 이라며 요즘말로 '닥치고 즐' 이라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아니, 최소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반대편에 서있는 진보세력이라면 낫다. 지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진보나 보수라고 구분지을 만큼 성향이 여물지도 않은 어린 청소년들이거나 정치에 무관심 했던 시민들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이처럼 보수에게 논리를 빼앗아 갔는가. 대운하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에서 무엇이 이토록 비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는가. 10년만에 되찾은 보수정권이라며 축배를 들어야 할 시간에 보수언론으로 하여금 정부편을 들면서도 한발은 빼놓고 정부를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설을 쓰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 이유로 현재 정권이 보수정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수나 진보, 이렇게 나눌 수 있을 만큼 정치적 신념이 여물지도 않은 인물이 대통령에 올라있고 보수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저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싸구려 보수가 그를 보좌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와 안정이 상실된 정권이 되어버린 것이다. 논리를 갖고 있는 정권은 아무리 반대 여론이 들끓더라도 침착하게 안정된 논리로 주장을 펴서 그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논리를 갖지 못한 정권은 그렇지 못한다.

자식을 야단치다 자식의 설명에 할말이 없어진 부모중 "이놈의 자식이 어디서 말대답이야!" 라면서 회초리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정통성과 논리를 갖지 못한 정권이 바로 그런 모습을 띠게 된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그랬으며 현재 이명박 정부가 그렇다. 집권하자마자 군사정권 시절의 모습이 거리에 재현되는 것을 보면 정말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둘간의 공통점은 국민을 설득할 타당한 논리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우리나라에 진정한 보수정권은 들어섰던 적이 없다고 보는 이유다.

전쟁을 거치면서 미래보다는 현재의 안정을 중요시 하는 성향이 강해졌기에 대한민국은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보수정권을 가진적이 없다. 진정한 보수 정치 세력을 보지 못했다.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 세력이 많은 지지를 받으면서도 '보수' 가 나쁘고 답답한 느낌의 단어로 굳어져 가는 것도 거기에 원인을 두고 있다. 엉뚱하게도 대다수의 '보수' 성향의 국민들을 '보수를 표방' 하는 세력이 지지세력으로 가져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고 그저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라 그들이 집권할때마다 사회적인 혼란이 오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좀 정책이 답답하더라도 사회가 안정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설득대신 몽둥이를 들고 있다. 진정한 보수로써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들 때문에 언젠가 대한민국에서 보수는 오로지 수구꼴통이라는 식으로 인지될까 두렵다.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정당, 언론들은 진정한 보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공부하고 고민해봐도 현재 자신들이 보수라고 주장하는 것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면 '보수' 라는 딱지를 스스로 떼버려야 한다. 그것이 이 땅을 살고 있는 진정한 '보수'를 위한 길이며 정치적 동반자이자 경쟁자로써 진보와 균형을 이뤄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2008년 5월 8일 목요일

끝이 없는 이명박의 아마추어리즘

작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는 부시 대통령과 면담하기로 했다면서 언론들을 불러 이를 자랑했다가 그런 계획은 없다는 부시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에 대한민국 외교사의 수치로 불리면서 아마추어 외교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 사건 이후 일단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기만 해서 현대건설이라는 초대형 기업을 부도로 몰아넣은 이명박의 대외 협상력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리고 얼마전,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에서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다름아니느 미국산 소의 수입규제 완화가 그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는지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할 틈도 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에 맞춰 1주일만에 검역주권마저 포기해가면서 속전속결로 타결한 이 협상을 놓고 광우병에 대한 공포심과 여론을 무시한 이명박 정부의 행보에 분노한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취임 석달째인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8% 대로 추락하는 지경에 이르자 다급해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해도 미국산 쇠고기 청문회장에서 재협상은 어렵다고 실무 책임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대답하고 있던 그 순간 국민의 건강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보호할 것이라면서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 중단할것이라고 말하는 웃지못할 코메디까지 벌였다. 결국 오전까지만 해도 재협상은 어렵다고 하던 관계당국 실무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깜짝발언 후 오후 청문회에서는 "어제 회의에서 인간광우병 발병시 수입중단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믿어 주겠느냐 라는 논의가 있었다" 라면서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통상 마찰이 발생하더라도 즉각 재협상 하겠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바뀌는 해프닝도 있었다.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국가 원수가 외국과의 통상 협상 결과문을 발효되기도 전에 '뒤집을 것' 이라며 공언하는 상황이 우습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언제까지 이들의 아마추어 외교를 보고 있어야 하는건지. 정치라는 것은 타협과 설득의 기술이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고 정주영 회장에게 배운 "밀어붙여" 밖에는 없는 듯 하다.

취임 석달.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아래로 내려갔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2008년 5월 3일 토요일

미국산 쇠고기, 진짜 문제는 검역 주권의 포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광우병의 공포로 분노한 시민들과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대립은 급기야 온라인에서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으로 번졌으며 거리에서는 촛불시위까지 벌어지게 만들었다.

불과 1년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해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주장했던 언론한나라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무엇때문에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기존의 주장을 180도 뒤집는 발언들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정부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더 큰 문제가 남는다.

정부가 이야기 하는 소위 끝장토론 에서 스스로 인정했듯이 시민들이 우려하듯이 광우병의 폭풍이 몰아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광우병이 전염되어 발병할 확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째서 '검역 중단' 이라는 강력한 보호 조치를 포기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최근 한국 전역을 몰아치고 있는 AI 에 대한 대처 방법을 보면 알 수 있다. 단 한마리의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 닭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반경 3km 에 있는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위험 요소가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있어서 바로 이러한 '국민의 건강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박탈했다.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여러건 발병하더라도 OIE 에서의 미국 지위가 변하지 않는 한 수입금지를 할 수 없다는 정부 자신의 발언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마지막 빗장까지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릇 가장 효과적인 안전 조치는 예방이다. 그렇기에 광우병 파동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시켰고 AI 발생 지역의 가금류들을 예외없이 살처분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미국내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동일한 쇠고기를 수입해서 먹고 있는 한국도 위험에 노출됐다고 보는 것이 옳고, 따라서 그 즉시 수입을 검역을 중단하고 후속 조치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검역 주권이며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해야할 필수적인 조치이다.

이 검역 주권을 포기한 것에 대해 정부는 '노무현 정권때 약속했던 것을 이행한 것' 이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한번도 검역 주권을 포기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설사 노무현 정권이 그렇게 약속했더라도 잘못된 것이라면 바로잡았어야 한다. 다른것은 노무현 정권때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면서 큰소리 치고는 이 문제에서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미국에서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이 발생했을 경우, 동일한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는 한국이 검역 중단을 할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며 지금이라도 포기했던 검역 주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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