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시사 블로그입니다

2008년 6월 1일 일요일

촛불시위 의료지원팀 봉사자입니다. 시위참가자, 기자, 경찰들께 부탁합니다.

의료지원팀 봉사자입니다.

어제까지 사흘 연속 참석했고 어제는 오후 6시부터 오늘 아침 9시 상황 종료될 때까지 있었으니 15시간을 뛰어 다녔군요. 살이 많이 빠졌을 것 같습니다. 결혼도 한 마당에 뜻하지 않게 킹카가 되면 어쩌나 살짝 고민도 되는군요. (집회 시작후 하루도 안빠지고 오늘도 20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킨 몬스터급-_- 봉사자 분들도 계시니 전 새발의 피이긴 합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최대한 명료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명로하게 한다 해도 좀 길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만 시위 참석 의사가 있으신 분들과 경찰, 기자분들은 가급적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시위 참석자 분들은 의료지원팀을 믿어 주십시요. 오늘 아침 물대포와 가스탄을 동시에 터트리면서 진압해오는 중무장 의경들 앞에서 스크럼을 짜고 끝까지 환자를 보호했던 저희들입니다. 치료의 편의를 위해 간의 진료소를 옮기는 경우는 있어도 저희는 어떤 경우에도 환자 여러분을 보호합니다. 그런 각오 없이 봉사하고 있는 봉사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쪽 의사 선생님들께서 진찰하시고 귀가를 권유하거나 병원행을 권유하면 제발 따라 주십시요. 딱 보기에도 위태위태해 보이는 분들이 고집을 부리시다가 결국 실신하셔서 구급차를 호출하게 됩니다. 저희는 시위대, 의경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입니다. 저희가 하는 말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말고 권유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봉사 참석하신 분들께 기존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대치 상황에서 무섭다고 몸 사리면 환자 못구합니다. 몸 다칠 각오하고 뛰어 드셔야 합니다." 라면 설명이 되려나요?

2. 의료지원팀이 간이진료소를 차리면 시위할 때 그곳을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도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자 겁에 질린 시위자 분들께서 간이 진료소로 보호를 요청하며 뛰어 들어오시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그걸 저희가 매정하게 막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저희가 짠 스크럼 안으로 시위자 분들께서 보호를 원하고 밀려들기 시작하면 저희 등 뒤에 누워있는(대부분은 운신을 못하는 상태의 환자입니다) 환자분들께서 도망가는 시위대와 진압하러 온 경찰의 발에 밟혀 크게 부상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현장에 남아계시려 하지 말고 멀리 도망가십시요. 욕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저희에겐 환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3. 합법적인 치료 행위가 가능하신 봉사자 분들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현재 지원팀에 나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탈진 직전 상태입니다. 거리 행진시에는 환자가 발생했다는 호출 때문에 행렬의 앞과 끝을 계속 뛰어 다니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시위대의 두배 이상의 거리를 뛰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찰과 대치하게 되면 그땐 눈코 뜰새 없이 바쁩니다. 오늘 아침 서울광장에 일부 의료팀이 모였을 때 다른곳에 있는 의료팀에서 짐이 많다며 도움을 요청해 왔지만 아무도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현재 나오시는 봉사자 분들에게 이이상 과도한 피로가 누적되면 저희가 실려갈 판입니다. 이를 보충하는 것은 합법적인 의료행위 가능자의 봉사참여입니다. 다만 대부분의 의료행위 필요는 새벽 대치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대치없이 끝난다면 환자가 안생길테니 상관 없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 10시 정도에 거리행진 끝나고 돌아가실 분은 저희가 사양합니다. 의료행위 가능자와 일반 봉사자로 팀을 짜는데 의료인이 집에 가버리면 그야말로 허공 쳐다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의술을 배우는 목적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요.

4. 경찰분들께 요청합니다. 의료지원팀 표시를 하고 뛰어다니는 저희를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시위에 참가해서 구호를 외치지 않습니다. 환자를 보호하는 것 이외에 어떠한 목적도 없습니다. 오늘 진압에서 얼마나 많은 중상자가 발생했는지 아십니까? 저희가 부른 구급차가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가 다른 장소에 발생했다면서 저희의 호출을 무시하고 지나친 경우가 저희 팀이 겪은 것만 너댓번은 된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의 중상자가 발생해서 저희가 응급조치를 취한 후 119 구급차에 실어보낸 환자도 부지기수입니다. 열번은 넘는 것 같고...정신없어서 다 세보진 못했습니다. 경상자들을 뺀, 응급조치가 없었다면 크게 잘못됐을 경우만 따져서 그렇습니다. 의료지원팀이 없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됐을까 아찔한 상황이 자주 발생해서 상황 종료후 저희들을 한숨 짓게 합니다. 다시말해 저희의 활동은 여러분이 사람을 죽이게 되는 일을, 평생을 사람을 죽였다는 후회속에 살게 되는 것을 막아드리고 있는 겁니다. 지난 며칠간 징글맞게 저희를 보셨을테니 저희 복장이나 특징은 모두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진압 도중 의료팀이 모여 있으면 환자가 있다는 뜻이므로 저희를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5. 언론 관계자 분들께 요청합니다. 저희가 환자를 돌볼 때 제발 와서 사진을 허락없이 찍어가지 말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겐 초상권과 인권이 있으며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보도자료로 쓰여선 안된다는 것 정도는 모두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거리니 저희가 요청하면 카메라를 치워 주시겠지요. 하지만 요청하지 않더라도 제발 무단으로 찍어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환자가 촬영을 허락하면 막지 않겠습니다만 환자들이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의사표시가 어렵습니다. 그럴경우 참아주십시요. 저희 의료지원팀은 혹시나 사소한 트집으로 현장에서 의료행위를 못하게 될까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봐야 할 저희가 환자의 초상권과 인권을 위해 기자분들께 사진찍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는 상황을 방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특별히 민중언론쪽 분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의료지원팀 봉사자 치고 여러분과 마찰을 빚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국민에게 알려야 할 거 아니냐면서 저희에게 화를 내시는데(과도한 신체접촉을 당하신 봉사자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환자의 기본적인 초상권과 인권을 무시한채 여러분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환자의 사진을 이용한다면 여러분이 조중동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메이저 언론과 민중언론 모두 단지 특종을 위해 기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원칙을 어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6. 의료지원팀에 오셔서 어디서 나오셨냐, 어디 소속이냐 줄기차게 묻는 기자분들, 이젠 포기하셨나요? 저희는 공개된 장소와 시간에 모인 사람들끼리 그날그날 팀을 짜서 활동하는 봉사자들입니다. 따라서 매일 매일 참가자 면면과 수가 다릅니다. 거짓말 같겠지만 서로의 이름도 모릅니다. 그저 서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정도입니다. 오늘 간이 진료소에서 열대여섯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있었지만 제가 이름을 아는 분은 단 한분도 없었습니다. 조편성을 위해 의료인, 비의료인만 물어보지 소속이나 이름은 묻지도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연락해야 하는 팀 연락책들 마저도 '여기 어디인데요' 라는 식으로 장소로 이야기 하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어느 단체에서 나온거냐는 식으로 자꾸 캐묻지 마십시요. 저희가 특정 단체에서 조직해서 나왔다면 그처럼 인력이 들쑥날쑥해서, 보급품이 모자라서 발을 동동 구르겠습니까? 저희한테 물품을 기부해 주시는 분들의 성함도 역시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은 물품이 너무 과도하게 여기저기서 들어와서 난감, 어느날은 너무 없어서 난감 이럽니다. 굳이 소속을 따져야 하시겠다면 저희는 대한민국 소속입니다.

나름대로 정리하며 쓴다고 썼는데 잘 썼는지 모르겠군요. 의식이 무의식과 자리바꿈 하겠다고 시위 중인데 몸상태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해보니 정당한 그 요구를 무시하는게 참 어렵군요. 들어주는게 합당한 조치겠지요. 제가 오늘 수없이 외치고 다녔던 말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여러분, 제발 다치지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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