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시사 블로그입니다

2007년 7월 24일 화요일

이랜드, 그리고 비정규직

언제나 그래 왔듯이, 이번 이랜드 사태에서도 노동계의 투쟁은 논리와는 거리를 둔 채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불쌍한 노동자들에 대한 글과 영상을 뿌리며 함께 공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할 수 없다.

한국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하며 그러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그동안 강력한 노조가 필요했었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주장은 객관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 번 이랜드 사태의 핵심은 계약만료된 계약직들의 일부와 이랜드 측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자꾸 자극성 언론이나 블로그 등에서는 '해고' 라고 주장 하는데 사용자측에서 계약기간 중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하는 것이 '해고' 의 정확한 의미다.

자, 여기서 문제 발생. 이들은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며 울부짖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가? 많은 이들이 할인매장 계산대에서 힘들게 일하는 아주머니들 운운 하면서 감정적으로 비난을 하고 있는데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어째서 할인매장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은 회사에서 장기적으로 채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 숙련자이고 비정규직은 단기적으로 필요하여 채용하는 비숙련자인 경우가 많다.

과연 할인매장 계산대에서 5년을 일한 사람과 1년을 일한 사람 사이에 업무처리 효율이 얼마나 차이가 날까? 이 차이가 크지 않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서 지속적으로 연봉을 올려주며 쓰느니 단기 계약직을 채용하는게 훨씬 유용하다.

또 한가지. 계약직은 계약이나 여타 상황에서 사측에 목소리를 크게 낼 수가 없다고들 한다. 이건 스스로가 내세울 수 있는 무기가 없다는 뜻이다. 나 역시 계약직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다. 계약 당시에 회사에서 내건 조건은 상여금등의 보너스 지급 없이 기본급만 받는 조건이었다. 난 그런 조건으로는 계약할 수 없다고 계약을 거부했고 결국 정직원과 동등한 대우에 보수는 약간 더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계약직이라고 왜 목소리를 못 내는가. 만일 계약할 때 '당신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 고 말하는 사측에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떠한 부분이 다르며 날 고용하는 것이 회사에 더 유리하다' 라고 주장해서 사측을 설득할 수 없는 노동자라면 정규직 요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크기가 그정도인걸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문제는 계약직의 계약 연장 여부가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노동환경은,

1. 동일노동 = 동일임금 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
2. 용역업체를 통한 파견직 근로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 두가지이다. 1번은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기업들을 선도해 나가야 할 문제다. 두번째는 사용자측을 아무리 두둘겨 봐야 해결되지 않을 문제다. 기업에서 용역업체를 통한 일괄계약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을 무슨 근거로 못하게 할 것인가. 문제가 있다면 용역업체에서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부분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2번은 다른 누구도 아닌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관련 법규를 확인하고 정비하여 용역업체에 고용된 근로자들의 노동 환경을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

나는 바로 국회에서 이런일 하라고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노당에게 지난 선거에서 정당표를 준 것이다. 길거리에 나와 띠를 두르고 고래고래 고함지르라고 뽑은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에 대한 법적 개선을 국회에서 하라고 밀어줬던 거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정권 획득을 위해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듯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이랜드 사태를 지켜보면 이들은 생색내기 좋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시위참여만 관심있지 이번 사태로 인해 연일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 이랜드 계열 매정들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들과 점주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이들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경우다. 계약직들이야 계약 연장이 안된걸 갖고 생떼를 쓰는 거지만 점주들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아내가 일했었기에 이들 매장이 얼마나 하루하루의 매출에 많은 영향을 받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때문에 아내도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점거농성을 한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고.

이번 이랜드 사태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누군가 자신의 주장이 관철될때까지 그 사람의 주장과는 아무 관계 없는 '당신' 입을 막고 음식을 못먹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힘 없고 불쌍한 노동자들..이라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호도하지 마라.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며 법치국가이다. 법이 약자에게 불리하다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정당에게 힘을 실어주어 법을 고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순서이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나와서 생떼를 쓰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 요구하기엔 좀 답답한 해결책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민노당 소속의 국회의원들 만큼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해결책이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그러기를 기대했던 민노당이 제대로 허공에 삽질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언제까지 노동투쟁 할때의 버릇을 못버릴 것인가. 그들이 싸울 곳인 길거리가 아니라 국회의사당인 것을. 다음 선거에선 민노당에게 표를 주지 않을 생각이다. 적어도 이들이 제대로 일한다는 확신이 설때 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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